
만남의 은혜
인생은 만남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작가요 의사였던 한스 카로사라는 사람의 명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이 만남의 연속입니다.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는 것도 만남이며,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는 것도 만남입니다.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는 것도 만남이며, 부부가 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세상이 살맛 나는 사람은 늦게까지 잘 수 없습니다. 눈뜨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만남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일찍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어나 봐야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만남이 잘 되면 삶에 의욕이 생기고 사랑의 기운이 충만해서 가난해도 행복하고 병들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매사에 자신이 있으며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만남의 은혜가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높은 벽이 있으며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깊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있어도 외로운 여자들이 많고 아내가 있어도 외로운 남자들도 많습니다. 본래는 잘 만났는데 많은 이들이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모순 속에서 살게 되느냐? 한마디로 만남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고집, 자기 판단대로만 세상을 살려 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바라보지를 못하고 또 제대로 만나지를 못합니다. 현대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만남의 방법을 계산[개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는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 만남의 최고의 방법은 하느님을 닮는 것이며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하느님을 만날 자격이 없었습니다. 자기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을 건지려 하느님이 직접 세상에 내려오시는데 그것도 죄 많은 인간으로 내려오십니다. 내려오신 것만도 황송한데 그분이 저 밑바닥의 죄인으로까지 내려오십니다.
죄인으로 내려오시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밑에 있던 천한 인생들은 용케도 그분을 알아봤습니다. 그때 밑바닥에 누가 있었느냐? 창녀와 세리가 있었고 문둥병 환자가 있었으며 귀머거리와 소경 등 인간 대접을 못 받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밑바닥 인생들이 놀랍게도 밑에 내려오신 주님을 만납니다. 만나니까 치유의 은혜를 받고 구원받습니다. 묘한 일입니다. 그러나 잘나서 똑똑했던 사람들은 못 만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밑에 계신 예수님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쫓아다니며 방해하고 시비를 겁니다.
(…)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만나는 최고의 방법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내려가야 하며 체면이 손상된다 해도 내려갈 때 세상을 잘 만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내려간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 쳐다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존경 받습니다. 내려가면 본인 자신도 편하며 또 옆에 있는 사람들도 편하게 만듭니다.
마태오 복음 15장에 보면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나옵니다. 그 여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 나아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딸이 마귀가 들려 고생하고 있으니 고쳐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에 제자들도 나서서 저 여자를 고쳐 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부인을 응원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자르듯이 말씀하십니다. 심하게 말하면 ‘개 같은’ 여자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심한 모독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부인은 굽히지 않습니다. 자기가 개나 짐승으로 천대받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다인의 정서로는 당연합니다. 다만 개 같은 인생이라 해도 주님의 은혜 한 조각만이라도 붙들고 딸만은 고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간청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여자를 극찬하셨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하고 칭찬하시며 그 여자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만일에 이 여자가 자기 자존심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돌아섰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여자는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은혜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고달프고 짜증나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광주에서의 일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어떤 똑똑한 할머니가 계신데 말 가지고는 누구에게 져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이를테면 ‘말발’이 아주 센 분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 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묘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합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 한번은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워 왔냐?” 하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때 며느리가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한테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모르는 것은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 하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러면 그때 시어머니가 할 말이 없습니다.
또 그랬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 나왔다고 하느냐?” 시어머니가 공연히 며느리를 사납게 흔들어 봅니다. 그래도 며느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즘 대학 나왔다고 해야 옛날 초등학교 나온 것만도 못합니다.” 매사에 그런 석입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건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막말로 아무리 찔러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 시어머니는 권위와 힘으로 며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러나 며느리가 겸손하게 내려가니까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겸손에는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잡으려다가 오히려 며느리에게 잡혔습니다. 교만은 겸손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습니다.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아니,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만남의 첫째 방법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억울해도 내려가고 자존심 상해도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합니다. 그려면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은총을 얻습니다.
만남의 둘째 방법은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 그분은 우리도 문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 묵시록 3장 20절에 보면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열어야 하느님도 만나고 자기 자신도 만납니다.
사람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에는 누구나 지저분한 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지 않으면, 열지 않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불행합니다.
(…) 자신을 연다는 것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의 죄가 얼마나 크고 또 얼마나 많으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끄집어 내놓으면 그 인생은 참으로 깨끗하고 심지어는 아름답게 됩니다. 아무리 더러운 인생도 그가 진심으로 참회하여 꺼낼 수만 있다면 그는 그 시간부터 더 이상 더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언젠가 안 믿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는 자기 인생 고백을 하는데 알고 보니 그야말로 오색잡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엉엉 울면서 “이런 죄인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나요?”라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하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누가 그 형제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지겠습니까? 누가 그를 단죄하겠습니까? 그날 그 사람만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제인 저도 함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못하여 흠이 많고 죄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 번만 잘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번 성사를 보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넘어지며 죄를 짓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실망해서 더 이상 성사 보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 자신을 개방한다는 것은 부끄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신을 여는 날 그는 치유될 수 있고, 개방하는 날 그는 엄청난 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죽는 것만큼이나 무섭습니다.
(…) 자기를 열어서 끄집어 내면 새 바람이 들어갑니다. 성경에서 바람은 ‘영’입니다. 새 영이 들어갑니다. 성령이 들어가니까 마귀가 발작을 일으켜 놓고 도망갑니다. “마음을 비워라.” 라는 말이 있는 마음을 비우면 새 바람이 들어가듯이 자신을 열어서 비우면 새 영이 들어갑니다.
(…) 감추는 사람한텐 우리도 문을 잠그고 감추게 됩니다. 잘못 열었다간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무슨 약점이 잡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쪽에서 열면 상대 쪽도 열리게 됩니다. 그때의 만남은 축복입니다. 열려진 문에 만남의 은혜가 있습니다. 만남의 두 번째 비결은 자신을 열고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진정으로 원하십니다. 절대로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요 병들었다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지혜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멋진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려갑시다. 자존심 상해도 내려가고 또 부끄러워도 자신을 활짝 열도록 합시다. 진정한 만남의 기쁨이 거기에 있으며, 새로운 세계가 거기에 있습니다. 아멘.
- 강길웅 신부의 은총 피정,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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