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시편 51,5
몇 년 전입니다. 소록도에 은인 자녀들을 초청하여 3박 4일 동안 현장 체험시킬 때 서울에서 네 명의 자매가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일이 끝난 뒤에 사제관에 불러 삼겹살 파티를 열어 주었는데, 자매들은 모두 40대의 주부였으나 제 눈에는 10대 소녀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맥주를 한 잔씩 따라 주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자매들 생애에 가장 기뻤던 사건이 언제였느냐?” 뻔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한 사람씩 차례로 말해 보라니까, 첫 번째 자매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나중엔 저를 흘겨보면서 말을 못하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자매를 시켰는데, 이 자매도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딸 죽은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가 울 때 다른 자매들도 다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슬픔의 주머니들을 몇 개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슬픈 얘기에 자기들의 슬픔 주머니가 터져서 눈물을 함께 흘립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때 위로도 받으며 치유도 받습니다. 제가 그 자매를 위해 기도를 하고 다음 차례의 자매에게 눈짓을 하자, 그 자매도 제 얼굴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왜 기쁜 일을 얘기하라니까 기쁜 일은 얘기 못하고 아프고 슬픈 일만 얘기할까요? 왜 그렇죠? 아프고 슬픈 일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참된 기쁨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슴에 새겨진 상처나 아픔은 인생에 있어서 수백분의 일도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작은 부분이 우리 인생 전체를 아주 피곤하게 만듭니다.
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올바르게 참회하면 죄가 오히려 복이 되어 그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 주는데, 회개를 하지 않으면 죄가 나뿐만 아니라 내 자녀, 내 후손에게도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시편 51의 5절 말씀인데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때는 기원전 991년경입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을 강화하고 정복 사업을 거의 마치게 되자 나라에는 태평성대가 찾아오게 되며, 다윗 개인적으로도 한가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긴장을 푸는 이 한가한 시간이 아주 위험한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때 사탄이 그 틈새를 노리고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느 날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았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우리야라는 부하의 아내 밧 세바였습니다. 다윗은 신하를 시켜 밧 세바를 불러다가 정을 통했는데 얼마가 지나자 밧 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기 죄를 감추기 위해 전장에 나가있는 밧 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부릅니다.
다윗은 우리야에게 술을 잔뜩 먹여 집에 가서 마누라와 함께 자라고 시켰는데 이 친구가 집에 가서 잠을 자지 않습니다. 이튿날에도 똑같이 술을 먹여 보냈으나 우리야가 집에 가지 않습니다. 다른 전우들은 전장에서 고생하는데 자기만 마누라하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결국 자기 죄를 감출 수 없게 되자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어 살해를 합니다.
그런데 그 죄가 다윗을 늘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죽은 우리야의 혼백이 밤마다 나타나서 “내 마누라 뺏은 놈, 이 천벌 받을 놈.”이라고 하면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너는 온전하게 살 줄 아느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원수를 갚겠다. 아니, 네 아들부터 죽이겠다.”라며 날마다 겁을 줍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밤마다 미칠 지경입니다. 결국 밧 세바가 낳은 첫아들은 죽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와 같은 엄청난 죄, 하느님을 떠났을 때 잠시도 편안할 수 없는 자신의 죄를 크게 뉘우치고 참회하는 내용입니다.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는 정말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삶의 곳곳에서 죄의 상처와 흔적을 남겨 놓습니다.
아니, 죄는 나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식, 내 손자들에게도 계속 따라다니면서 괴롭힙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자기 죄를 알아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이 해결 안 되면 삶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로마서 7장에서 고백했듯이,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지만 육체는 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왜 이런 모순되고 비참한 결과가 생기느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조상들이 물려준 선악의 지시에 따라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보면 사람이 하느님께 잘했을 때 그 축복을 몇 대에 걸쳐 주시기도 하지만, 잘못했을 때는 그 벌과 저주를 또 몇 대에 걸쳐 내리시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조상 덕분에 복 받는 후손도 있고 조상 때문에 벌받는 후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 당대에 이 저주와 불행의 씨를 소멸시켜야 합니다. 무서운 악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오셨으며 예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그 축복으로 바꾸는 비결이 뭐냐? 그 비결과 방법은 회갭니다. 회개는 저주를 복으로 바꾸는 기묘한 약입니다.
…그러나 참회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잘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사실은 내가 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고 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내가 나를 잘 모릅니다.이를테면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 무엇이 고통스럽게 숨겨져 있고 감춰져 있는지 모릅니다. 알면서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모양은 다르지만, 그 비슷한 상처 몇 개씩은 가슴에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나오는 아픔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병들게 합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 과격한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유난히 시기 질투가 많은 사람, 낭비벽이 심한 사람, 술만 마시면 주벽이 있는 사람, 엉뚱한 거짓말로 자신을 위장하며 불안해하는 사람, 늘 도전적인 사람, 6계명에 자주 시달리는 사람, 남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부적절한 요소들이 우리 인생을 우리도 모르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 자신을 깊이 있게 성찰해 봐야 합니다. 단순히 미사 몇 번 빠졌다, 기도 몇 번 못했다라는 식의 성찰과 고백이 아니라 무엇이 근본적으로 나를 어둡게 하고,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지, 근원부터 따져 봐야 합니다. 이것이 해결 안 되면, 잘 먹어도 불행하고 기도하고 봉사해도 불행합니다.
…알파치노가 주연한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입니다. 알파치노가 이 영화로 65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미 육군 퇴역 장교인 알파치노는 시각 장애인이 되었는데 성격이 아주 포악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그리고 술 담배로 잔뜩 찌들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카 가족이 그를 돌보고 있지만 조카 가족들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며 항상 으르렁거립니다.
어느 날 조카 가족이 휴가를 떠나면서 휴가 동안에 알파치노를 돌볼 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아주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알파치노도 은밀하게 자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뉴욕의 최고급 호텔에서 잠자고 먹고 마시면서 인생의 마지막 잔치를 걸게 벌이는데, 이때 멋모르고 뉴욕까지 따라온 아르바이트 학생도 사실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잘못을 우연히 목격했는데, 그 사실을 학교 당국에 알리지 않으면 퇴학당할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고를 친 놈들이 스스로 사실을 고백해야 하는데 끝까지 감추고 숨기려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생은 애매한 위치가 됩니다. 그런데 알파치노가 아르바이트생의 고민을 예민하게 감지하는데,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차가 왜 이렇게 무거우냐?” 학생에게 큰 걱정거리가 있다는 걸 알고는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호텔에서의 일입니다. 알파치노가 자살하려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아르바이트생이 깜짝 놀라 권총을 뺏으면서 기를 쓰고 말리는데, 이때 알파치노가 “나는 악한 사람이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자신이 포악하고 못돼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때 학생이 말합니다. “아저씨는 악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는 아르바이트생의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아저씨는 악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병은 자랑해야 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병을 선전해야 여러 가지 처방이 나올 수 있으며 고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병을 감추면 고칠 수 있는 길이 막힙니다.
죄도 마찬가집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갖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고 그래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알면서도, 죄를 감추고 숨긴다면 그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죄를 자녀와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로 상처를 뿌리며 공동체 물을 흐리게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 ‘상처를 치유받게 도와 달라.’는 공동체에 대한 호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 뿌리는 자를 그냥 미워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한 편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받은 상처나 저주가 치유되고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놈이 내 돈을 100만 원 떼어먹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놈이 돈이 있으면서도 갚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습니다. 돈을 돌려 달라고 하면 법으로 하랍니다. 차용증을 써 준 것도 아닌데, 날강도 같은 놈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을 미워하고 욕하느라고 내 인생이 병들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고 이성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억울하고 속상하긴 하지만, 그때는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손해보고 상처받은 것이 오히려 나에게 복이 되어야지, 그것 때문에 내가 저주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 때문에 고통받는 것도 억울한데 그놈 때문에 우리가 벌을 받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용서는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물론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그놈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지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로부터 오는 저주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저주는 잘못을 저지른 조상으로부터도 오지만 잘못된 이웃들로부터도 옵니다.
그래서 속상할 때, “주님, 저 사람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손해 본 것이 주님 뜻이라면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내 죄도 용서받고, 그 사람도 언젠가는 용서받아서 나에게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건성으로 한다든지, 일상적인 기도를 너무 쉽게 빼먹는다든지, 텔레비전에 너무 시간을 뺏긴다든지, 잔소리가 많다든지, 남의 허물을 잘 들춘다든지, 옆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든지, 낭비가 심하다든지, 게을러서 가족들을 피곤하게 한다든지 등등, 작은 것을 못 고치면, 큰 죄를 진 사람보다 더 불행합니다.
…큰 죄는 자기가 늘 보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뉘우쳐서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작은 죄는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뉘우칠 수가 없고, 뉘우치지 못하니까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이 아이들에게 말씀하실 때, 소죄 때문에 공심판 때까지 연옥에 있어야 하는 영혼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고해성사를 잘 보셔야 합니다. 가톨릭에는 아름다운 보화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사람의 죄를 사람에게 고백하느냐고 시비를 걸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모습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남에게 말 못할 사연들도 감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세상 어디 가서 우리 죄를 고백하겠습니까? 고해실에 있는 신부는 하느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참된 용서는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죄를 깊이 성찰하여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악습을 뿌리 뽑아 저주와 벌에서 해방되도록 합시다. 이것이 나와 내 자녀 그리고 내 후손들에게 줄 소중한 선물입니다. 아멘.
- 강길웅 신부의 은총 피정,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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