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의 즐거움
기도를 흔히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대화란 서로 마주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모르면 주고받을 말이 없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한 여학생을 소개받았는데 학교도 서로 달랐고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여자를 한 번 만나 보고는 ‘세상에 여자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어떤 여자도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색하고 쑥스러우며 또 굉장히 피곤합니다. 따라서 대화를 하려면 서로 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듣고 싶은 것이 있고 또 들을 것이 있으며 그리고 할 말이 있고 또 하고 싶은 말도 있습니다. 서로 잘 알면 몇 시간을 대화하며 함께 있어도 즐겁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면 단 십 분도 어렵습니다.
하느님과의 대화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모르면 하느님 앞에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어색합니다. 보통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모르니까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분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기도 시간만 되면 답답하고 고달프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를 하기 위해선 첫째로 하느님을 알아야 하며, 하느님을 알기 위해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둘째로, 대화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는 사람이 잘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똑똑하게 말을 잘한다 해도 그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는 대화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또 들으려는 성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예 대화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피곤합니다.
(…) 대화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화 자체가 너무 고달프게 됩니다. 대화란 때로는 눈으로 하며, 때로는 손으로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충분한 대화가 될 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은 못해도 서로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눈만 봐도 알게 되며 또 그 표정만 봐도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아이가 배가 고픈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지 이내 알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가 안 된다는 것은 이를테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며 느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불행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렇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으며 애정이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애정을 가지고 자주 함께 있어야 하고 또 자꾸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셋째는, 기도할 때 긴 말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은 간단하게, 그리고 마음은 오랫동안 시간을 나눠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이 길어지다 보면 거짓말을 하게 되며 또 필요 없는 말로 서로 맘을 상하게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꼭 필요한 것은 한마딥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를 빼고 다른 것만 길게 한다면 대화 자체가 피곤하게 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떤 꼬마가 설거지를 하는 자기 엄마에게 달려와서 “엄마, 나 엄마를 사랑해.” 하더랍니다. 엄마가 기가 막혀서 “너 사랑이 뭔지 아니?” 하고 물으니까 “나도 다 알아!” 하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런데 다섯 살 때 한 딸의 말이 대학을 다니는 오늘까지도 잊혀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요한 비안네 신부님 본당에 어떤 농부가 일을 하러 들에 갈 때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나 항상 성당에 와서 기도를 하더랍니다. 냉담자 많고 말썽 많은 곳에서 그 농부는 참으로 보기 드문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신부님이 농부를 불러서 물었답니다.
“당신은 일을 하러 갈 때나 또는 일을 하고 돌아올 때나 항상 성당에 와서 기도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합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 농부가 하는 말이, “신부님, 저는 하느님께 뭘 얻기 위해 성당에 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주님을 보고 있으면 주님도 저를 보고 계시기 때문에 그 눈빛이 좋아서 늘 찾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더랍니다.
신부님이 농부의 말을 듣고 아주 놀랐답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야말로 바로 관상기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관상기도는 서로 바라보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보면서 듣고 느끼고 감동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 시간을 오래 나누십시오. 감사와 흠숭이 저절로 나올 때까지 충분히 마주 바라 보십시오. 그래야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넷째는, 성경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자기 생각만 가지고 뭘 달라고 하는 기도는 아직도 여전히 유치한 기도입니다. 성숙한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찬미와 감사, 또는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히 성경을 보면 잘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 1장 39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장면을 가지고 기도를 해 보면, 먼저 성경을 읽고 또 읽어 본 뒤에 다시 그 앞뒤의 성경을 한 번 봅니다. 그러면 대강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분위기와 내용을 가지고 한번 상상을 하면서 느낌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마리아가 성령의 은혜로 아무도 모르게 임신을 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비밀로 오직 성령과 자신만 압니다. 부모도 모르고 약혼자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얘기해 봐야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도대체 시골 처녀인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안 믿습니다. 그러니까 고민이 생깁니다. 자꾸 배는 불러 오는데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 마리아는 어무 엄청난 일이라 겁이 났고 또 모든 것이 왠지 의심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시원스럽게 누구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언니를 찾아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것인데 이때 엘리사벳이 아주 기뻐하며 마리아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걱정하지 말고 믿어라. 나를 보아라. 누가 보든지 아기를 못 낳는 여자라고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늦은 나이에도 아기를 갖게 되었잖느냐? 너도 분명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어쩐지 네가 내 집 대문에 들어설 때 내 배 속에 든 아기가 기뻐서 뛰노는 것 같더구나. 이게 어디 보통 기쁜 날이냐. 우리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자.
그때 마리아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또 언니의 말을 통해서 어떤 확신을 갖게 되니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영감에 찬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마니피캇’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분위기를 우리가 함께 체험하면서 느껴 보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며, 그 은혜에 흠뻑 취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지금 말씀드린 내용은 실제 상황과 엄청나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서 성경의 분위기에 깊이 들어가다 보면 우리가 보다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며 또 성경의 글자 뒤에 감춰진 내용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것을 기도하는 사람은 들을 수 있으며,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기도하는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좀 어렵다 해도 성경을 가지고 기도해 보십시오. 이것은 사람들이 잘 시도를 하지 않는 기도의 방법이긴 하지만 기도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다섯째는, 억지로라도 기도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열 배, 백 배 낫다는 것입니다. 대개 억지로 기도하면 무슨 은혜가 있느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형식으로라도 기도를 바치는 것하고 안 바치는 것하고는 큰 차이가 납니다.
(…) 이를테면 아들이 술 먹고 밤늦게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아버지께서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걱정이 되니까 주무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늦게 들어오다가 아버지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도 술이 취했다는 핑계로 인사도 안 드리고 자기 방에 그냥 들어가 잠을 잔다면 그 자체가 부모에게 대단히 불효를 하는 것입니다. 형식으로라도 인사를 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런 때 아들의 인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때는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늦게 돌아오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며 그날 따라 유난히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절이요 그것이 상식입니다. 술이 취했다 해서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 여러분도 아무리 피곤하고 또는 화가 나서 기도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는 가정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둘이나 셋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당신 자신이 바로 거기에 계시겠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믿는다고 하면서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 그게 바로 멋지게 사는 것입니다. 돈 가지고 멋지게 사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나 지식만 가지고 멋지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도 안에서 멋지고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병이 있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멋지게 사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서워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부모는 기도의 습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줘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쳐 줄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특히 좋은 습관은 인내심을 가지고 길러 줘야 합니다. 삶의 소중한 지혜가 거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정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내 아내와 내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그 가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장 편한 곳이고 가장 따뜻한 곳이며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 기도가 없다면 그 가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무시받는 가정이고 스스로 천대받는 가정입니다.
일곱째로 성체조배를 하십시오. 시간만 있으면 누구든지 성체조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좀 어폐 있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주님이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며 또 우리와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어떤 때는 정말 우리를 그리워하십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주님 대전에 나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그분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한 때도 드뭅니다. 삶의 기쁨이 거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작아도 그 작은 것을 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동원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며 권력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으로 채워지며 하느님으로 채워집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를 ‘영혼의 숨결’로 비유했습니다. 좋은 표현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숨을 쉬게 되어 있습니다. 숨을 쉬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생명입니다. 숨을 쉼으로써 생명체가 성장하고 생명을 발전시킵니다. 따라서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며 숨을 쉰다는 것은 또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도 멀쩡한 사람에게 “제발, 숨 좀 쉬게.”하고 강요 하지는 않습니다.
(…) 신앙이 있다는 것은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대화가 없다면 그는 자녀가 아닙니다. 대화를 안 하는 그 자체로 아버지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죽어 가는 사람, 영혼이 죽은 사람은 기도가 안 됩니다.
여러분, 기도의 맛을 들이십시오. 기도는 노동이 아니며, 어려운 수학 문제도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기도 안에서 참 즐거움을 만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온갖 보배를 거기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이 찾으십니다. 특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아멘.
출처 : 강길웅 신부의 은총 피정 -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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