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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좋은글 묵상글 나눔 -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OHEL 2026. 4. 28. 18:00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마르 10, 51

 

있게 주십시오.” 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마르코 복음 10 51절의 말씀인데, 성경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리코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르티매오라는 보는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는 따라오면서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 시대에 눈먼 소경이나 장애인들은 삶이 아주 비참했습니다. 보는 장애도 장애지만, 하느님한테 저주받았다는 사회의 인식 때문에 그들은 살아 있어도 마치 살아 있는 송장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환자도 말씀 한마디로 고쳐 주신다는 예수님이 지금 자기 앞을 지나가신다고 하자 있는 힘을 다해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아시면서도 일부러 묻습니다. 이때 소경이 청합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있게 주십시오.”

* * *

제가 주제를 택했는고 하니,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보는 소경일 있기 때문입니다. 봐야 것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봐야 것만 보아 , 눈이 닫혀 버린 소경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간에, 우리는 눈을 떠야 하고 어떻게 눈을 떠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신학생 저희 반에 품행이 단정치 못한 신학생이 사람 있었습니다. 친구는 평소에 공부도 하고 학교 규칙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공동생활에서 사람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친구는 우리 학년의 분심덩어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놈은 얼마 못살다 신학교를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봐도 신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가지도 않습니다. 한번은 4학년 때였습니다. 학교 소풍을 갔는데 제가 오가피주를 마시고 취하게 되었습니다취한 김에 학교 앞에서 막걸리 되를 마시고 들어갔습니다밤새도록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토했으며 이튿날 아침에는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썽꾸러기 신학생이 방에 찾아와서는, 가라고 해도 가지도 않고 약을 온다, 라면을 끓여 온다 하며 하루 종일 옆에서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러나 강의 시간이니 어서 가서 강의나 들으라고 해도 들어가고 이럽니다. 제가 어디 한두 빠졌나요?”

저는 그때 그놈을 다시 봤습니다. 저는 그놈을 번도 사랑으로 적이 없습니다. 저놈은 신부가 것이다 하여 완전히 무시하며 살았는데, 그날 나에게는 그놈처럼 고마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뿐만도 아닙니다. 나중 얘기지만, 저는 이미 신부가 되었고 친구는 군대에 갔다 오느라고 2,3 늦었습니다.

[ ]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 글쎄 이놈이 교황님 옆에서 부제 복사를 했습니다. 그걸 보고 하느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눈을 있는가?

첫째는, 나만이 옳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우리가 고정관념이나 편견 때문에 사람을 잘못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사건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습니까?

18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후줄근한 옷차림을 부부가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총장실을 예고 없이 방문했습니다. 총장 비서는 첫눈에, 이런 사람은 대학에 볼일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총장님은 매우 바빠서 약속 없이 오면 만날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때 부부는 그럼, 시간이 나실 때까지 기다리겠다면서 한쪽에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거절을 했으면 쉽게 돌아갈 알았는데, 무려 시간을 묵묵히 기다립니다.

…“ 때문에 오셨습니까?” 총장이 귀찮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저희 아들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1 동안 공부를 했는데, 하버드 대학교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캠퍼스 어느 곳이든 아들의 이름을 따서 기념물을 하나 세워 주고 싶습니다.” 그러자 총장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버드를 다니다 죽은 어떤 사람에게도 동상 건립은 허락할 없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우리는 아이의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이름으로 건물을 하나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말을 듣자 총장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건물을 짓는 돈이 얼마나 드는 아십니까? 학교 건물을 모두 짓는 무려 750 달러나 들었습니다.”

그때 부인이 남편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여보, 대학교를 짓는 겨우 그것밖에 드는 거에요? 그럼 차라리 우리가 대학교를 하나 세우는 것이 낫겠군요?” 그러자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부는 자리에서 물러나 캘리포니아에 가서 그들의 이름을 따서 대학을 세웠는데 이것이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가 그렇게 해서 생겨납니다.

많이 배웠다 해서 올바로 보는 것도 아니며, 성직자라 해서 제대로 바라보는 것도 아닙니다. 편견이 있으면 누구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얼마나 많이 봉사하느냐? 이거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 않느냐?” 만일 그가 주님께 눈을 뜨지 못했으면 기도하고 봉사한 것만큼 오히려 불평하고 시기 질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눈뜨면 누가 때려도 아프지 않고 누가 찔러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가끔 기도회에서은혜 받았다, 알렐루야!” 하고 박수를 치는데 저는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은혜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정말 은혜 받았는지 알아보는 방법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마음을 찔러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번에 표가 납니다.

사람이 정말 눈을 떴거나 진짜 은혜를 받았으면 누가 찔러도 아프다고 하지 않으며, 누가 때려도 섭섭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분이 너무 좋기 때문에 참을 있고 이해할 있습니다.

둘째로, 눈을 뜨기 위해서는 자존심이나 체면을 버려야 하는데 그것들이 사실은 너무 좋아 우리 능력이나 재주로는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고맙게도 버릴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때가 언제냐? 그것은 원하지 않는 불청객이 찾아올 땝니다.

남편은 교수요 아내는 의사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너무 똑똑하니까 자존심이 강했는데 여자 쪽이 심했습니다.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이혼하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이혼하기 직전입니다.

어느 부인이 자기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같다는 것입니다. 대학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하니 달밖에 남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잘난 여자가 갑자기 가장 못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헤어질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암이래요. 달밖에 산대요.” 말은 남편에게도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고 잘나서 보기가 싫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가 되어 자기 앞에 초라하게 있으니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자의 눈에는 자기 도와 달라는 호소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불쌍한 아내에 대해 새로운 애정이 생겨 자기도 모르게 여자를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여자는 울고 나서 남편이 너무 고마웠고, 남편이 그동안 자기에게 너무 잘해 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 가지 유언이 있어요.” “뭐요?”

내가 죽거든 좋은 여자 만나서 다시 장가들어 여자에게도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 잘해 주세요. 이게 마지막 소원이에요.” 눈을 뜨니 남편이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남자도 눈을 뜨니 여자가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됩니다.

당신은 죽지 않아.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 주겠소.” 그런데 이상합니다. 얼마 후에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하니 암이 없어졌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삶에서 감사하고 베풀 줄을 아는 삶으로 바뀌자 암세포가 죽은 것입니다. 뒤부터는 부인이 겸손한 여자가 되어 부부가 아주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유도 모르게 얻어맞는 아픔 속에는 어떤 선물이 있습니다. 따라서 불청객이 찾아올 화만 내지 말고 무슨 선물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눈을 뜨는 번째 방법은, 억지로라도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수도원에 갔더니 현관 입구에사랑하면 보게 것이고, 보게 되면 사랑할 것이다.” 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눈이기 때문에 가장 선명하게 있습니다.

며느리를 몹시 미워하는 시어머니가 있는데 며느리가 잘못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연히 시집살이를 시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주눅이 들어 자꾸 실수를 합니다. 못한다고 뒤따라 다니며 나무라면 못하게 됩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고해성사를 사정을 알고 계시던 신부님이 보속을 주시면서하루에 번씩 일주일 동안 며느리를 매일 칭찬해 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칭찬을 하면 미사 영성체도 하시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하셨습니다. 할머니로서는 큰일이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었습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까 며느리가 벌써 부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자기도 모르게피곤할 텐데 일찍 일어났구나.” 하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때 생전 처음 시어머니로부터 따뜻한 말을 들은 며느리는 그만 감복하게 됩니다.

청소를 하면 청소를 칭찬해 주고, 빨래를 하면 빨래를 칭찬해 줍니다. 그런데 사실 시어머니 가슴에는 꽃이 피게 됩니다.

시어머니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어떤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날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잠을 자려고 눕자 갑자기 며느리에 대한 이쁜 생각이 났습니다. 며느리나 자기나 집에 고생하러 왔는데 당신이 너무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면서 내일부터는 칭찬을 주고 사랑해 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며느리도 그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를 그동안 오해했던 것이 죄송했으며, 사소한 고생에 대해 너무 쉽게 불평을 가졌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오래 사실 있도록 모시겠다고 마음속으로 번을 다짐했습니다. 사람이 서로 따뜻한 사랑을 갖자 아주 다정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눈을 뜨지 못하면 수가 없고, 하느님의 은혜가 가득 넘쳐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느끼지 못합니다.

나만 옳은 것이 아닙니다. 편견을 버립시다. 애매한 불청객에겐 선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은혜로 받아들입시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사랑합시다. 그러면 눈을 떠서 평화를 바라볼 것입니다. 아멘.

 

출처 : 강길웅 신부의 은총 피정 - '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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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만큼 기다리는 만큼 | 강길웅 | 생활성서사 - 예스24

강길웅 신부의 피정 강론집. 요한 21장 6절, 마르 10장 51절, 시편 51장 5절 등과 설교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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